"때로는 숭고하지만 대개는 부질없는 문화의 헛된 방탕함을 위해 건배. ㅡ A toast for the ambivalence of much bloody hypocritical but sometimes sublime cluture."
28.12.12
Recht und Pflicht
"Sie haben ein Recht zu missverstehen.
Aber ich habe keine Pflicht einer Einwendung über Ihre Missverstehen."
21.12.12
19.12.12
Demokratie
Demokratie? Was ist anders, dass Ihrem Geliebte sich von Ihnen verabschiedet hat?
>> Einen Link auf Spiegel erste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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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12
Their weapons.
I told this 'These' already. But I saying twice this now.
'Disease is not their weapon,
Our fear and our interest are their 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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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12
Vielen Dank für Ihre Einladung.
Ich bitte Ihnen, dass Sie mir nur E-Mail schicken.
Meine Adresse ist.. chargedlx at gmail dot com
Wenn Sie mir eine E-Mail schicken, würde ich spätestens in 2 oder 3 Tagen geantwortet.
10.10.12
Eine Sammlung
ㅡ Heute hab ich arbeiten beginnt. Diese Arbeit ist nicht einfach, trotzdem ich viele Erfahrung und neue Idee bekommen habe.
x. Eine Sammlung
ㅡ Ein Paar Monaten dachte ich über eine Sammlung, trotzdem ich nicht positive gedacht habe.
Spätere Industrielle Revolution könnte man anzusammeln, dass man nicht reich war. Und spätere Kommerzialisierung des Internets könnte fast alle Leute ganz einfach anzusammeln. Freilich ist eine Otaku-Kultur in hierunter gehört. Eine Sammlung ist wie ganz wichtig in alle Subkultur ausgesicht. Durch diese Worte. z.B. 'Unique', 'Rare' und 'Limited'. Einige Künstler machte ihre Sammlung in ihren Ausstellung zu zeigen. Einige Suchtige heißen sie selbst 'Zweite Weltkriegsucht' und sammeln sich die Heeresbestände von Nazis und Japan. "Was machen wir vor diesem Problem?"
Als erste Zeit der Kommerzialisierung des Internets dachten viele Rock Mania, dass sie die Lizenzierung Musik gemeinsam wieder gegenseitig hörten. Das war genug. Aber Jetzt denken wir nicht viel interessieren, dass wir einzige Musik bekommen könnten.
Freilich hab ich nicht über das Archive verneint. Ich hab gefühlt, dass eine Sammlung wie die Ansammlung des Kapital ist. Ich kann diese Problem in meinem Kopf malen, trotzdem ich keine Lust habe, dass ich mich jetzt über eine Sammlung entscheide, was eine Sammlung ist. Aber ich überzeuge mich wie.. "Schien nutzlos. Es ist kein komisch, dass alle von ihnen 'Früher oder später' wie regen auf den Ruinen herunterfallen.
Dinge wie Hausrat, Puppen sind in den Ruinen gefunden.
Hier ist. ich habe zu fürchten gestaltet, dass es köperloser Bulldozer ist.
<Eine Ruine aus Japan>
x. 수집
수집이란 것에 대해 몇 달을 생각해보았지만 좋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부자가 아닌 사람도 수집할 수 있었고 인터넷의 상용화 이후부터는 거의 누구나 가능해졌다. 오타쿠 문화도 이 중 하나이고, 모든 하위 문화 전반에 걸쳐 '유니크' 라던가, '레어', '리미티드' 같은 단어를 통해 수집은 더욱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아예 어떤 예술가는 '수집된 시간' 이라는 것을 매개로 자신이 모아온 골동품들이나 여러 근대 ~ 현대시대의 수집품들을 작품으로 내놓기까지 하고 있다. '2차 대전광' 을 자처하며, 당시의 전범국인 일본과 나치 독일의 군용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가 해야할 행동은 과연 무엇일까?
인터넷 상용화 초입 시절인 90년대 말~ 2k 초반만해도 한국의 락음악 매니아들은 해외밴드들
의 정식 라이센스 음반만 가지고도 서로 돌려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명밴드는 고사하고, 희귀한 음원을 구하더라도 그다지 신기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물론 아카이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느끼는 수집은 자본의 축적과 같은 느낌. 머리 속에서 그림은 그려지는데,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부질 없는 짓이다. 머지 않아 그것들 모두 폐허 더미에 비처럼 쏟아진다 하여도 전혀 이상히 여길 일이 아니다." 라고 확신한다.
불난 가정집 혹은 재개발 지역에서 발견되는 가재도구, 인형 같은 것처럼..
이 것이 내가 공포로 여기는 형체 없는 불도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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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2
Reflexion.
Heute hab ich mich schuldig zweite Mal in meinem Leben gefühlt, dass ich einen ruhigen Kaffee trinke. Manchmal trank ich auch ebenfalls ein Bier, trotzdem ich nicht schuldiger als diesem Kaffee von heute gefühlt habe. Das ist eine Antinomie meines schlechten Gewohnheiten. Ich frage mich: "habe ich ein Recht diesem Kaffee zu trinken?". Vielleicht soll ich zweifältige.. dreifältige innere Einkehren halten. Reflexion.. Reflexion.... Reflexion gegen Irrationalität.
오늘 내 인생에 두번 째로 여유로운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평소에도 가끔씩 맥주를 마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의 이 커피만큼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 것은 나의 나쁜 습관들 중 하나의 모순이다. "나는 과연 이 커피를 마실 자격이 있는가?" 라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마도 나는 두번.. 혹은 세번 정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성찰, 성찰, 부조리에 대한 성찰.
Ein Kaffee.
오늘 내 인생에 두번 째로 여유로운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평소에도 가끔씩 맥주를 마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의 이 커피만큼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 것은 나의 나쁜 습관들 중 하나의 모순이다. "나는 과연 이 커피를 마실 자격이 있는가?" 라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마도 나는 두번.. 혹은 세번 정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성찰, 성찰, 부조리에 대한 성찰.
<Earthquake, zasammensetzen Foto>
"Ich habe dir eine Frage.
Hast du das Desaster und die Katastrophe gefüh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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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2
Letzte Woche und diese Monat
이번 달 말에 G.A.U 라는 친구네 d-beat 밴드랑 같이 공연 하는 DISCO//OSLO라는 밴드인데, 음악이 묘하게 against me의 센세이셔널 하드코어 버젼 같다.
저번 주에는 쾨피 주변에 새로 점거에 들어간 하위 문화, 여러 토론 포럼, 상영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스쾃과 주로 디스코펑크/크러스트들만 있는 새로운 공연장을 찾았는데, 이 공연장은 다른 공연장들처럼 여전히 싸면서도 훨씬 깨끗했다. 물론 이 곳 친구들 매너도 좋았다. 이러한 곳들은 대개 나와 새봄이가 처음으로 찾은 한국 사람.
예전에 이야기한 토미하우스라는 스쾃은 무정부주의적인 성향보다는 안티파 정도 성향의 펑크들이 많이 오는데 뭔가 가족적이긴 해도 정치적으로 당연한 것들만 이야기 하거나 무엇인가 두리뭉실하고, 색동펑크에 좀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쾨피는 기본적으로 아나키스트인 펑크, 활동가들이 훨씬 많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쾨피의 가장 큰 공연장은 섭휴만스(Subhumans)와 같은 고전적인 아나코 펑크 스타일이나 대부분이거나 RASH(Red and Anarchist SkinHead)의 공연을 수용하고, 작은 공연장에서 블랙/크러스트/데쓰 공연들이 줄을 이으며, 테크노 켈러, 소규모 극장, 인포샵, 인공 암벽, 스텐실 크류 등 여러 무리가 모여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항상 완전히 단결된 느낌은 오지 않는다. 물론 쾨피에서 거리를 점거 하는 페스티발을 할 때나 20주년 기념 페스티발 등의 행사를 할 때는 출신을 막론하고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의 크러스트/펑크들까지 죄다 모여 단결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름을 잊은 이 새 공연장은 크러스트 중심이라 그런지 정치적으로나 매너 같은 것들이 좋은 편이다. 노숙과 구걸을 하며 길거리에서 반사회적인 행동을 즐기는 펑크들과는 확실히 구분 된다. 대개 이런 장소들이 사진을 꺼려하기 때문에 몇 친구들과 밴드들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사진 찍기가 다소 꺼려진다. 말 트며 친해지기 전까지의 텃새도 크러스트들보다 보통의 색동 펑크들이 잦은 편.
다음 DISCO//OSLO 페이지에 들어가면 다른 영상을 감상할 수 있고, 앨범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다.
http://www.discooslo.com/mediathe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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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2
Gegen GEMA
단발적으로 계속 독일 저작권 협회 게마(GEMA)에 반대하는 시위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조금씩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유튜브/GEMA(GEMA外 7개의 저작권 협회)의 법정 분쟁 이후에 볼 수 없는 유튜브 비디오가 부쩍 늘었는데, 예를 들면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비틀즈 음원이나 비디오가 불법이다. 물론 아직 제제 되지 않은 비디오들로 볼 수 있지만, 더 빡치는 이유는 원저작자인 밴드/싱어/DJ 가 직접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식 뮤직비디오를 올리더라도 GEMA와의 직접적인 저작권 조율이 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그 기준도 굉장히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 올리는 유튜브들 중 몇 가지를 종종 볼 수 없다. 가장 최근에 겪은 것으로는 MBC에서 올린 싸이 관련 영상이나 싸이 측에서 공식적으로 유튜브에 공개한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GEMA는 저작권 감시만을 통해 한 해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850억 유로, 한화로 12조 2700억 정도 된다. 그런데 종전의 유튜브/GEMA의 법정 분쟁 이후에 이것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 GEMA 시23발. 긴 글.
7.9.12
Ein lustige Platz
Ich habe einen Plan für meine Ausstellung in diese lustige Platz.
Köpi 근처에 버려진 공장을 하나 찾았는데, 여기 공장 옆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Tipi(인디언 텐트)를 치고 모닥불 피우고 산다. 내년 전시 공간으로 쓸 계획을 생각중인데 이미 그 쪽 사는 대빵 할아버지랑 이야기는 끝냈고, 하루 맥주 한박스 사주면, 자기네가 직접 전기 훔쳐다주고, 만약의 경찰의 진입도 막아줄 수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올 때를 대비해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여러 종류의 책을 구할 수 있는데, 여기를 찾은 한국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북한 소녀 두 명이 가끔 온다는데.. 나한테 굉장히 우호적이었다. 사진 몇 장 허락 받고 찍었는데, 둘러보기 바빠서 잘 찍지도 않았다. 딱 나를 위한 공간 아닌가?
1층에만 이런 공간에 네개 정도 더 있고, 2층도 넓고, 3층은 조금 낮은 천장, 옥상에서 젊은이들 몇몇이랑 티피(Tipi, 인디언텐트) 거주자들 열명 정도가 올라와서 악기 연주하고 바람 맞으며, 햇볕 쬐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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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
Eine Bild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하나 그리고 있습니다. 열흘 전, 저는 꿈 속에서 짖눌려 있던 무엇인가를 느끼고 서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거기엔 당신도 있고, 나도 있고, 당신과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Obscene Extreme Festival에 대한 Review도 곧 쓰려 하는데 요즘 무엇인가 말하기 힘든 일을 겪고 있다는 실언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Lange Zeit nichts geschrieben. Ebenfalls habe ich eine Bild gemalt. Ca. fuhlte ich hermetisch in einem Traum. Dann strömte die Tränen mich aus den Augen. So male ich zu erinnern. Da bist du und ich auch und vorbeigehende Leute neben dir und mir. Ja, dem ist so.
Ich schreibe sofort eine Review über Obscene Extreme Festival, trotzdem ich nur einer faule Ausrede 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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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12
Stop Indect Berlin, konzert und neue Werke von heute
옵씬 익스트림 페스티발(Obscene Extreme Festival)에 대한 리뷰를 아직 쓰지 못한 채 내일 ACTA와 관련 Stop Indect Berlin 시위에 나갑니다. 현재 CCTV를 비롯한 감시체계를 만들고 연구하는 데, 공공예산을 사용되면서도 그에 대한 연구를 공개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번에도 후일로 기약 하겠습니다.
후에 베를린(Berlin) 에서의 제 첫 전시에 대한 미팅을 잠깐 갖을 예정입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별달리 알려드릴 것이 없지만, 지난 상반기에 두 차례나 취소될 수 밖에 없었던 제 전시들의 이유를 이번 전시에서 찾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쾨피(Köpi)의 AGH에서 있을 섭휴먼스(Subhumans) 공연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포츠담(Potsdam) 사는 Dodi라는 친구가 이번에도 베를린(Berlin)에 온다고 하더군요. 내일 밤은 지난 번에 거절했던 파티에 참석할 것 같습니다. 다들 좋은 주말 되시길..
_
Ich suche Kay Buggert! Am Letzte Wochenende trafen wir am Garten von Köpi zusammen. Damals zeigte Kay mir seiner deutschen Pass auf. Und er sagte mir: "Sucht mich auf Facebook!". Aber ich konnte nicht ihn. Wenn Sie ihm kennen oder Kay liest meine Post. Melde mich sofort an. Auf diese Post oder zu meinen E-mail.
후에 베를린(Berlin) 에서의 제 첫 전시에 대한 미팅을 잠깐 갖을 예정입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이 없기 때문에 별달리 알려드릴 것이 없지만, 지난 상반기에 두 차례나 취소될 수 밖에 없었던 제 전시들의 이유를 이번 전시에서 찾으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쾨피(Köpi)의 AGH에서 있을 섭휴먼스(Subhumans) 공연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포츠담(Potsdam) 사는 Dodi라는 친구가 이번에도 베를린(Berlin)에 온다고 하더군요. 내일 밤은 지난 번에 거절했던 파티에 참석할 것 같습니다. 다들 좋은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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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12
Wolfbrigade in Potsdam ㅡ 17. Mai. 2012
<Wolfbrigade와 Crowskin의 Flyer>
전 날까지 Staatlichen Akademie der Bildende Kunst Stuttgart의 Rainer Ganahl 교수님과 Kontak을 위해 시간을 보냈는 데, 몇 일 고생 끝에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Wolfbrigade의 공연을 보기 위해 Potsdam을 찾았다. Black Fleck이라는 클럽은 Potsdam의 펑크들에게 사랑받는 공연장으로 알려져 있다. Potsdam은 생각보다 굉장히 작은 도시였고, 주변에 무너진 건물들이 거의 복구 되지 않은 채 방치 되어있었다. Mitfahren 웹사이트에서 단 35유로에 Stuttgart에서 Berlin까지 가는 친구를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일반 왕복 버스가 찾기 어렵고 그마저도 최소 330유로에서 400유로 이상 하는 데에다가 기차도 이와 마찬가지 혹은 더 비싼 가격이니 나에게 Mitfahren 웹사이트는 독일 생활에 필수 수단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Stuttgart에서의 Rainer Ganahl 교수님과의 Kontak에 대해서도 이야기 더 하고 싶지만, 많은 사람들의 요청 속에서도 나의 귀찮음과 이 포스팅의 본연의 의도로 돌아가 후 일을 기약하겠다.
아무튼 Crowskin과 Wolfbrigade의 이 공연이 단 돈 5€라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 |
| <Die Straße vor Black Fleck in Potsdam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
이 날 공연은 Potsdam을 Local Scene으로 활동하는 Cyness라는 Grind Band의 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공연이 열려야만 했을 것 같은 Berlin이 아닌 Potsdam에서 열렸다. 물론 이 포스팅도 Cyness와 Crowskin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만 하겠지만, 나는 사실 Crowskin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지 못하므로 그에 대한 포스팅은 나중에 Potsdam의 Crustie, Punks 모임인 Cancer Clan 친구들과 만난 이후에 하겠다.
아무튼 이 엄청난 공연을 앞두고 Black Fleck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와 새봄이는 많은 무리의 Berlin 펑크들이 무리지어 Black Fleck을 향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길 찾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ㅡ 사진에 보일지 모르겠지만 ㅡ 도착한 그 곳에서는 공연 시간이 멀었는데도 어림잡아 100명 이상의 펑크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냥 딱봐도 아시안은 나와 새봄 밖에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봤고, 우리가 가진 커다란 등산 가방들을 대뜸 바에다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보통은 이럴 때 팁을 요구 하는데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안전하게 보관해주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Wolfbrigade의 Merchandise를 뒤적뒤적, 과거의 앨범 CD와 LP들 티셔츠들을 보고 곧장 새 앨범 <Damned>와 Wolfpack 시절의 티셔츠를 구매! 그러나 바로 입는건 좀 오타쿠 같은 짓이라 느껴져서 여행자 차림의 모습으로 놀기로 결정하고 맥주를 퍼마셨다.
이윽고 여성 보컬을 필두로한 Crowskin의 공연이 시작 되었는데 Crowskin은 상당히 질척거리며 절규하는 음악을 기반으로 Potsdam에서는 꽤나 알려진 밴드였다. 나도 좁은 공연장에 가득찬 무리들 속에서 맥주병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놀기야 했지만, 사전에 미리 좀 알아보지 않고 간 것이 밴드에게 미안.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땀에 흠뻑 젖어 보컬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Crowskin의 영상은 찍지 못했기 때문에 2년 전 라이브>
땀에 흠뻑 젖은 머리칼과 티셔츠.. 맥주 한병 들고 잠시 열기를 식히기 위해 공연장 앞으로 나갔다. 맥주를 한 모금 삼키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왠지 친근한 모습의 아시안이 보였다. 무작정 다가가서 독일어로 말을 걸었는데 잘 하지 못했다. 독일에 가족과 함께 Potsdam에 온지 몇 달 안 되어 아직 독일어를 배우는 중이라 하였고, 우리 또한 독일어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Dodi. 그의 이름은 Dodi였다. 인도네시아 Crust Scene에서 날라온.. 우리는 베를린에 산다며 자주 보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밴드들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R.A.M.B.O 의 투어 이야기를 조금 했고, Clust Bomb Unit 의 투어 이야기도 나누었다. 금새 친해진 이 친구와 맥주를 몇 병 마시고 담배를 몇 개비 연거푸어 피웠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작은 공연장이 좀 전의 Crowskin 공연 때보다 더 미어터진다. 한번 나가면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 어떻게 보게 된 공연인데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밀고 들어갔다. 안에서 Köpi와 Tommyhaus에서 만난 크러스트들과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선 당연히 Berlin을 제치고 Wolfbrigade를 위해 Potsdam에 와야하지 않겠냐며 서로 씨익 웃었다. 이윽고 Wolfbrigade가 시작하고.. 비좁은 공연장에서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들어졌다. 흔들리는 관중의 물결 속에서 가만히 힘을 빼고 있어보니 발이 공연장 바닥에 안 닿았다. 한미FTA 반대 시위에서 겪었던 일을 Potsdam에서 다시 겪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괜스레 울컥했다. 비장한 Wolfbrigade의 음악이 나를 더욱 때리기 때문이었을까?
<Wolfbrigade in Potsdam>
ㅡ 아쉬운 19초.
<Wolfbrigade in Potsdam>
ㅡ 공연장의 앞부분 밖에 찍지 못했다.
뒤쪽으로는 사람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오지도 못할정도.
<Wolfbrigade in Potsdam>
ㅡ Micke.
<Wolfbrigade in Potsdam>
ㅡ Erik이 늑대 무리들을 선동하고 있다.
<Wolfbrigade in Potsdam>
ㅡ 이 때쯤 나는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고 있었음.
공연은 굉장했다. 아쉽게도 나는 놀아야만 했고, 내 Handy에는 Mape 작업 때문에 용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단 19초의 영상과 사진 몇 장 밖에 찍지 못했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가 Wolfbrigade의 공연을 보면서 멍하니 영상이나 찍고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이 어두운 공간에서 저들은 사냥을 앞둔 늑대떼들처럼 으르렁 대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대부분이 흔들렸고, 어쩌다 나도 모르게 터진 플래시가 전부.. 나도 아쉽지만, 그 순간의 살아있는 사진은 새봄이 찍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ㅡ Erik, Johan.
ㅡ Potsdam Scene에 반가이 화답하는 Erik, Johan, Micke.
ㅡ 대장 늑대 Micke의 포효에 왼쪽 하단에서 Tom Götz가 함께 으르렁 거리고 있다.
ㅡ Micke 앞의 가운데 친구는 나와 새봄이 Obscene Extreme Festival에 가는데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인데 온라인에서 본명을 쓰지 않으므로.. Hammerheadphil이라고만 밝혀둔다.
ㅡ 직업이 Tattooist인 드러머 Dadde.
ㅡ 이 좁은 곳에서 사람들 머리 위로 올라가는 것은 자유이지만, 내려올 때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ㅡ 왼쪽이 Cyness 드러머, 마치 늑대 대장의 growling에 함성을 외치는 늑대무리 같은.
ㅡ 잠시 멈추고 세팅중에 Johan.
ㅡ 뜨거운 피가 끓는 Micke와 드럼치는 Dadde.
위 사진들은 새봄이가 필름으로 찍어낸 순간들이다. 나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사진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모양. 어떻게 찍은 사진 모두가 이렇게 굉장한지.. 아무튼 마지막 곡인 것처럼 잠시 Wolfbrigade가 연주하지 않을 때 다른 녀석들이 벌써 끝나면 안된다고 동요할 때쯤 나는 당연히 <Awakening>을 기다리며 "Awaken me! Awakening us! Please!" 를 외치며 growling.. 역시나 Wolfbrigade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Awakening을 포효!
<Wolfbrigade의 Awakening과 가사>
공연이 끝나고 나와 새봄 Dodi는 모두 지쳤다. 특히나 나는 땀에 온 몸이 젖었다.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있는데, Berlin 사는 펑크들이 차가 끊길새라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간다. 나와 새봄은 그냥 노숙하기로 작정한터라 남아서 술을 더 마시기로 했는데, 새봄은 별로 마시지 않았고 나는 맥주를 두세병 더 비워버리며 취하기 시작했다. 내가 새봄이에게 오늘은 취하지 말자는 약속을 다 마셔버렸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였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결국 나에 대한 반성과 새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든다.
ㅡ Jocke와 Erik.. "뭐 오늘 공연은 괜찮았어.." 라는 듯.
ㅡ Dadde가 Johan과 Micke에게 "나 오늘 드럼 치는거 봤어?"라고 자랑하는 듯.
ㅡ 단란한 늑대가족.. Dadde는 어디가고, Johan, Jocke, Erik, Micke.
ㅡ 다음 일정을 이야기 중인듯 한.. Johan, Micke, Erik
그 사이에 Wolfbrigade 사진을 새봄이가 찍었는데, 실수로 기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하니 기타가 조금 당황 했었다고 한다. Wolfbrigade는 역시 크러스트들의 살아있는 전설답게 주르륵 넷이 벽에 기대 앉아 팔짱 끼고 입을 다문채 맥주만 마셨다. 나는 Dodi와 Wolfbrigade와 함께 사진을.. 그러나 드럼은 공연장을 찾은 다른 여자 펑크와 이야기하느라 바빳기 때문에 네 멤버만이 사진에 나왔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진탕 취한 나는 Wolfbrigade를 앞에 두고 필름이 끊겼다. 집에 어떻게 온지 잘 기억도 안 나는데 Potsdam 친구들이 도와주고, 새봄이는 진땀을 뺐다고..
<Wolfbrigade in Potsdam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문제의 사진..
사진만 보면 내가 공연을 하고, Wolfbrigade가 나의 공연을 보러온 것 같지 않은가?
Johan, Jocke, Erick, 나, Micke, Dodi.
다시는 이렇게 취하면 안 될 듯하다.
이 사진 찍은 후에 새봄이가 Neonazi에 대한 플라이어를 몇 장 줏었고, 나는 당연히 아닐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봄이가 궁금해 함에 따라 그곳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는데 Potsdam은 매우 작은 도시라 펑크들이 공연할 만한 곳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Black Fleck 공연장을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크러스트 공연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놀라운 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했다.
공연은 정말로 굉장했으나..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나누고 싶은 욕심을 이렇게나마 아쉬움으로 드러내본다. 그러나 나는 추억하지 않겠다. 우리의 시간은 과거에 묻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포스팅을 쓰는데만도 거의 한시간 반이 걸렸으므로.. Obscene Extreme Festival과 Schöneweide에서의 Anti-Neonazi 시위에 관한 포스팅은 뒤로 미뤄둔다.
Handy로 찍은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은 Saebom Lee 의 사진이므로 사진의 상업적 사용및 편집, 재가공 등의 2차 저작은 Saebom Lee에게 문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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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ort :
Black Fleck, Zeppelinstraße 26, 14471 포츠담 독일
11.7.12
Ein Gedächtnis des Obscene Extreme Festival 2012 - 2, Erstetag in Trustnov
* Ein Gedächtnis des Obscene Extreme Festival 2012 - 2, Erstetag in Trutnov
(OEF, 2012의 기억. 두번째 날, 트루트노브)
# 6. In den Obscene Extreme Fest! ㅡ OEF 속으로!
<Philipp Driving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전 날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일어나자마자 Philipp과 Bambi는 Kaffee부터 찾았다. 그리고 바로 Philipp의 차를 타고 Trutnov로 향했다.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고속도로에서 Philipp은 졸음을 쫒기 위해서인지 음악을 크게 틀었다. 몇 년만에 Blood For Blood의 노래를 들으며 작은 Seoul Szene 있었던 일들이 괜스레 생각났다.
# 7. Crust und Grind Szene in Seoul, Südkorea ㅡ 남한의 크러스트, 그라인드 씬.
<Crying Nut - 말달리자(Let's get started), 1996>
<Nobrain - 청춘98(Youth98), 1998>
<Rux - 우리는 한마음(Our minds are all the same), 2005>
거의 8년은 달려왔는데 아직도 Seoul에는 외국의 많은 Szene에 소개할만큼 크지 못했다. 한국의 Punk/Hardcore Szene은 아직도 민족주의적이거나 우파적인 Band 들이 '신념'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몇 년전의 나는 민족주의에 반대하거나 단지 Anti-Kriegen Demonstration(反戰 시위) 참가를 이유로 몇 차례 두들겨 맞기도 했다. 지금은 다 옛날 일이라지만, 이러한 음악들이 한국 Punk/Hardcore Szene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자본주의에 찬성하는 Band 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에 한국의 Crust/Grind Szene은 온전히 성장할 수 없었다.
2005년~ 2008년 쯤에는 혼돈청춘(混沌靑春, Chaos Class)라는 Punk 공동체(Clan)이 잠시나마 자리를 잡아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운동(Anti Pyungtaek erweiterte US Militärstützpunkt Bewegung), 새만금방조제반대운동(Anti Saemanguem Fangdamm Bewegung), 용산참사 연대(Yongsan Unglückfalls Solidarität), 한미FTA반대(Anti KOR-US FTA), APEC 반대(Anti APEC), 쌍용차 노조(Ssangyong Motor Labor Solidarität) 등에 연대하고 스터디 그룹(Study Gruppe)과 채식그룹, Fanzine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 Schade.. Jetzt habe ich kein Foto der damalige Zeit.
(아쉽게도 나는 지금 당시 사진들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대다수가 흩어졌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며, Dokkaebi Assault 같은 Band 들만이 남아있으며, 이따금씩 자발적으로 Fyfan, Darge와 같은 밴드들의 Tour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Crust / Grind Szene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내가 있고,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우리의 친구들이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Dokkaebi Assault - 전쟁터(Battlefield)>
<Banran, 반란, 反亂 - Pure Blood, Being Retarded>
<Cal Bones - Capitalism>
<Scumraid - Madness of Mind>
<Christfuck>
<Bamsoem Pirates - Über-Oui ㅡ Video>
# 8. OEF Camp! ㅡ OEF 캠프 입성!
한국의 Szene을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잊은줄만 알았던 Blood For Blood의 가사를 따라 부르는 나를 발견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찰나.. Trutnov 교통 표지판이 보이며, Markt(마트)에 들렀다. Philipp은 OEF 경험이 많지만, 나는 처음이므로 무엇을 사두는게 좋을지 몰랐다. 일단 약간의 과일과 물 12Liter, Whisky를 한 병 사서 나오는데, Philipp이 날 불렀다. OEF 공연장 내로는 외부의 음료와 식품 반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어있는 Plastik Flasche(페트병)에 위스키 한병을 가득 채우고선 OEF Camp로 향했다.
<Ein Campplatz in OEF ㅡ Mein Foto>
ㅡ 이 곳은 캠핑장중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이런 공간들이 두개쯤 더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저 멀리 보이는 들판 옆 나무들 사이로 무엇인가 세워지고 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OEF Camp로 입성! 그러나 그늘진 좋은 자리들은 이미 먼저 온 많은 Crustie들이 Zelt(텐트)를 세우고 있었다. 한켠에 차를 세워두고 Philipp과 내가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한 곳에 차를 세웠다. 사실 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Philipp이 우리를 만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라며 작은 Zelt를 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고맙다고 했는데, 나중에 이 것이 없었으면 우린 절망적인 상황에 도달했을 것이다.
<Eine Stelle suche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햇살이 따사롭기 때문에 나무 옆에 텐트를 치려고 했는데,
이미 좋은 자리들은 다른 Crustie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Schönen Feld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Windows 배경화면에 나올법한 들판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Wo ist unser Platz?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공연장 가까이 좋은 자리는 하나도 없다.
<Campcar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아예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끌고오는 Crust들도 여럿 있었고,
커다란 등산가방을 지고 오는 Crust들도 여럿 있었다.
<Schönen Feld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가슴 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Einige Zelte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조금씩 들어서고 있는데.. 나중에는 이 곳이 텐트로 가득찬다.
<Zelte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다음번에는 꼭 큰 텐트와 아이스 박스를 챙겨와야겠어!
<Fresh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내가 가본 유럽 도시들은 한국처럼 산이 많지 않고, 낮은 언덕이나
끝 없는 초원들, 목장들, 농지들이 대부분이다.
<Cloud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이 날씨가 계속 되면 좋으련만..
<Hmm?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약을 한 것도 아닌데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취해있을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필립에게 다시 고마움을 전한다.
"Philipp! Hast du diese Posting gelesen? Mir und Saebom danke dir an, dass du uns deine Zelt gabst. Wenn du uns nicht diese Geschenk gabst.. ungelogen machten mir und Saebom selber großem Unfall zu machen. Also danke ich dir wieder an!"
("필립! 이 포스팅 읽고 있니? 새봄과 나는 우리에게 텐트를 준 네게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어. 만약 네가 그 선물을 주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우리는 큰 사고를 당했을거야. 이 글을 쓰는 지금 네게 다시 한번 고마워하고 있어!"
<Saebom und Zelt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작은 1인용 Zelt 같지만, Philipp이 주지 않았다면 우리에겐 대재앙이 일어났을 것이다.
잠을 자기 전까진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나고 둘째 날부터 얼음같은 추위를 체험.
<Philipp und Bambi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이제 한 숨 돌리며, 위스키에 담배 한 모금..
운전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Philipp도 이제서야 진정 해맑은 얼굴!
Philipp은 독일의 Crust Band인 Rawside의 노래를 틀며 내게 추천해줬다.
<Was sagen ihr?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Mir und Yuying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아, 참! OEF 말고, 독일의 Essen(에쎈) 근처에서 열린 Extreme Fest에 다녀온 Yuying을 만났다! 덕분에 한국에서 날아온 담배도 한갑 얻었다. 다른 독일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왔는데, 그 쪽이 나중에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아 우리가 자리 잡은 쪽으로 Zelt를 옮겼다. 나는 이제 긴장이 조금 풀리려나.. 표정이...
<Yuying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능숙하게 Zelt를 옮기고선 자리를 정리한 Yuying.
<Lustig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공연장 내부에서 파는 OEF Plastikglas에 맥주를 가득채워 온 뒤 밖에서 사온 Whisky로 Jack coke을 만들어 마셨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푸른 들판에서 이렇게 술을 마시는데 도시로부터 해방된 느낌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Handy는 이미 Flight Mode. 몇 일간 나 찾을 사람들은 모두 옆에 있다. 아직도 이 때를 기억하는 것은 이 때처럼 모든 걱정에서 해방된 적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걱정에서 해방된 만큼 내가 늘 고민하던 부분들을 정리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 9. This is Extreme!
<Ein Weg zu OEF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OEF 안으로 들어가는 길..
<OEF Stuff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현장에서 직접 구매한 OEF Eintritt-Karte(입장권)는 4일동안 55Euro 밖에 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싼 가격인지는 차차 설명하겠지만, 다른 Festival들은 유명해지면서 3일~ 4일에 70Euro~ 200Euro 정도하니 OEF가 얼마나 싼지 가늠할 수 있다. Eintritt-Karte를 구입하니 입장할 때 확인하는 Eintritt-Armband(입장팔찌)를 그 자리에서 채워주는데, 이 Eintritt-Armband는 매년 바뀐다. 열성적인 OEF Fan들은 이 Armband를 조심스레 뜯어 바느질한뒤 평소에도 착용하거나 뜯지 않은채 몇 년씩 착용한다. 아무튼 이 Eintritt-Karte를 구입하면 Armband 이외에도 OEF Konzertplan(공연 시간표)와 CD, Vorstellung von OEF Bands(OEF 참가 밴드 설명 소책자)를 주는데, 이 소책자에 각 Band의 자세한 소개가 있다.
8만원이 채 되지 않는 입장료로 이정도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이 되는가? 요즘 한국에서도 Rock Festival이 많아지고 있는데, 나는 운영방식이나 Band 섭외 등의 면에서 한국의 Rock Festival에 부정적이다. 한국과 같은 Rockmusik 불모지에서라면 행사 주최사의 수익을 챙기는 구조이기보다 Szene 형성을 위해 더 매진해야할 것인데, 어떻게 된 판인지 한국의 Rock Festival은 전혀 저렴하지도 않고, 참가자에게 규제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러한 상업적인 Festival에 대한 비판이 없는 풍토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어떤 Rock Festival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목을 들이대며 자국의 Band들에게 최소한의 교통비도 지급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운영방식이다. 굳이 Punk가 아니더라도 나는 독일에 와서 만난 몇 Band들로부터 Promotion CD를 받아 한국 Rock Festival 운영진에게 전달할 생각이 있긴한데,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볼 때 과연 의미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Was ist los?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너네 뭐하는거야?"라고 묻더니 어린 Crustie들이 환하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
<Ass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한국에도 내 엉덩이를 보여줘야 돼!
<Ass as alone :P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이제 그만 안으로 더 들어가려 하는데, "내 엉덩이가 가려졌잖아! 다시 찍어줘!"라고 하더니 바지를 다시 내린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일들은 한 두번 있는 장난들이 아니다. OEF에 있는 모든 Crustie들이 장난을 좋아하고, 냉소적이지 않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 한다.
<Woher kommst du?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너 어디서 왔니?" 독일에도 한국어처럼 경어체가 있다. 한국처럼 첫 만남에서는 경어체를 쓰는게 보편적인데 이 독일 Crustie는 첫 만남부터 친근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Nordkorea oder Südkorea?"라며 되묻는다. 생각보다 많은 Asien들이 유럽에 거주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중립적이고 자세한 이슈들은 독일 언론에서 더 많이 나온다. 때문에 북한과 남한 사이의 관계나 정치적 상황들을 묻는 질문들이 많다.
예를 들어 북한 사람을 만나봤냐는 질문이나, 남한 내의 자본주의, 시위들, 경찰폭력, Crust/Grind Szene 등등. 특히나 Crust/Grind Szene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Indonesia나 Malaysia, Singapole, Japan 같은 곳의 Szene들은 굉장히 유명한데 반해 남한 내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 등에 대해서 듣고는 내가 영어 혹은 독일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서 잘못 전달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상세히 설명을 해주면, "믿을 수 없다. 왜 젊은이들은 공공교육을 국가에 요구하지 않는가?" 등의 질문을 다시 던진다. 유럽의 젊은 친구들과 만날 때 항상 겪는 문제인데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독일의 예를 들자면 작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원래부터 교육이 기본 권리로서 공공부분에 속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학등록금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부터 중도 우파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많은 주에서 대학 등록금을 일제히 인상했다. 많은 반발이 있었는데 한학기 대학 등록금은 최대 500유로, 75만원~ 85만원 선이다. 물론 한학기 150만원정도 하는 사립 대학들도 있긴 한데, 그런 곳들은 손에 꼽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면 경제적 형편에 따라 대학생들은 연금을 지원 받고, 교통비를 전액 지원 받는다. 굉장히 편리한 대학내 시설들을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화염병이 등장했고, 경찰들과 수 많은 대치들이 있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대학 등록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한 학기당 3500Euro~ 8300Euro(500만원~ 1200만원) 수준이다. 물론 국립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국립대에서도 1800Euro(250만원) 정도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 한국 사회의 문제일까? 한국의 대학은 대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
현재 학생운동권에서 요구하는 반값 등록금이 맞는 것일까? 나는 한국의 '반값등록금' 운동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다. 정말 교육을 서비스가 아닌 공공부분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무상 등록금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온당한데,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만큼을 요구한다는 것은 공공교육에 대한 대의적 명분이 사라진다. 이미 감사원에서 대학 등록금 조사를 통해 "대학 등록금이 교육의 질과 관련없다."라는 평을 내놓았더라도 그 감사 기준에 대해서 다시 검토 해봐야 할 것이며, 적어도 대학 운영비 총공개및 그에 대한 실질적 검토가 전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한 할 말이 굉장히 많지만, OEF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므로 외국의 대학 등록금에 관한 Posting을 Link 하겠다. 멍청한 한국 대학생과 운동권, 시민단체를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화가 난다. 내가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를 취하고 있다고? 그러기에 앞서 당신 통장 잔고와 지출및 수입 내역, 실질적 부채부터 확인해보길 바란다.
# 9. Olympic? Hell, No! This is Olymfreak Games! ㅡ 올림픽? 아니! 올림프릭!
<Was machen Sie?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쟤네 대체 뭐하는거지?" OEF 첫 날은 공연에 앞서 몸을 푸는 날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밀린 이야기들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한 잔하며 또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간다.
Crust는 Anarchismus(무정부주의)의 연장선으로 권력적인 자본주의로 가득찬 Olympic 에 반대한다. 한국에서야 모든 공영 방송, 케이블 방송들이 너나 할 것 없이 Olympic과 Worldcup을 생중계하며 방송질서를 어지럽히는 데 반해 Europa의 방송들은 그 기간에 모두를 할애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편적인 사람들은 Olympic이 이미 자본가들에 의해 부패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곳엔 Sportsmanship이란 단어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질뿐 Multinationales Unternehmen(다국적 기업)들의 향연일 뿐이다. 우리는 그러한 허상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OEF의 첫 날에 그것들을 풍자하기 위해 Olympic과 Freak의 합성어인 Olymfreak을 진행한다. 우리에게도 참가하겠냐는 질문들을 던졌는데, 우리는 구경만 하기로 했다. 왜 거절했는지는 금새 알게될 것이다.
<Nei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은 Olymfreak의 한 종목의 '소금물 마시기' 대회이다. 그냥 마시면 되지 않냐고? 소금 한포대를 물에 들이부어 그걸 계속해서 마시는데, 내가 알기론 이것이 위세척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팀당 정해진 양을 마셔야 하는 경기인데 한 컵의 절반도 마시지 못한채 토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옆에 한명이 이미 토하고 있다. :P 이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면 당신도 소금을 한바가지 풀어 마셔보라. 위세척, 위세척!
<Ach!!!!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나는 "이런 씨foot!!!!"을 외치고야 말았다.
<Gewinner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한 Crustie가 다 마실 것을 공언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Wie schmeckt das?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직접 마셔보니 맛이 어떠니?
<Ahhhh! :S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약속을 지키겠다며, 잘도 마신다.
<So schlect, ich will nie das trinke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다신 안 마실거야!
<This is mine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빨간 머리의 여성은 나중에 조금 친해졌다. 정말 잘 마시더라.
이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에게 "같이 나가자" 권유 했는데, 거절하길 잘했다.
<Trink! Trink!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사람들이 응원한다. 왜? 나도 모르겠다.
<Schei-#*$^%ße!!!!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우커리ㅏㅁ느-!!!" 하며 토하던 참가자.
아마 속으로 '내가 이걸 왜 마시려고 했을까' 하고 되내이겠지.
<Ende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너만 성공하면 돼!"를 외치는 같은 팀 참가자.
이 Olymfreak의 함정은 우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참가만 해도 우승자 또는 패자. 이들에게 숫자로 매겨진 순위는 아무 의미 없다. 아무튼 '소금물 마시기' 종목은 Olymfreak의 일부분일 뿐이다. 다른 대여섯 종목들이 더 있는데, '남성의 잦이를 끈으로 묶어 달리기' 라던가 '두 사람의 항문에 연결끈을 넣어 달리기' 등등 충격적인 Game들이 더 있다. 안전 문제? 걱정할 것 없다. OEF에는 이미 구급요원들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안전요원들, 구급차 모두 배치되어 있다. 경기 종목들을 보면서 느낀 점 한가지는 "다칠 확율은 적지만, 모두 하고 싶지 않은 경기다. 다만 불가능한 Game은 아니며, 용기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근데 난 안 할거야!"
# 10. OEF Konzertplatz ㅡ OEF 공연장.
<Viele Stüle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엥? 왜 공연장에 의자냐고? 다른 Festival과 달리 OEF 공연장은 야외 극장 구조로 되어 있다. 이거 불편하지 않냐고? 아니! 절대 필요하고! 모든 Festival에 필요할거야! 무대 앞에는 이미 충분히 놀만한 자리가 넓게 있고, 뒤에는 너무 피곤한 사람들이 쉬면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 낡은 의자들이었지만 굉장히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는 날쯤엔 Crustie들이 이 의자들 위에서 뛰어놀다 넘어져 부숴진 것을 조금 발견할 수 있었다.
<Ach so kommst du Südkorea!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아 너 남한에서 왔다고!" 라고 말해준 친구. 오른 쪽에는 아까 그 소금물 마시던 친구가 있다. 그러고보니 순서가 좀 바뀌었는데, 이 때는 소금물을 마시기 전이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소금물 마시기' 대회 나가자고 권유하는데, 나중에 되서 거절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지. 내가 무슨 문제를 겪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얼굴과 이름을 잘 잊는 편이다. 항상 미안할 수 밖에 없지. 왼쪽 친구는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져 취해있었는데.. 우리가 되게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첫째 날, 한참을 같이 마셨다. 나중에는 자주 보지 못했는데, 이유인 즉 OEF에 온 사람들도 많거니와 OEF 자체가 워낙 커서 한번 헤어지며년 전화도 안 터지고 만나기 힘든 상황.
<Schönes Wetter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날씨가 너무 좋아 맥주가 잘 들어갔다. 남산(Berühmtes Berg in Seoul)만한 배는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Tschechen 맥주 역시 맛이 좋다.
<Eine Bühne in OEF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드디어 무대가 세워지고 있다. 오늘은 공연 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설레이지.
무대 설치하는 사람들도 Crust/Grind Fan들이었다.
저 Eisenrahmen(철제 프레임) 위를 해적처럼 건너 다니던데..
<Konzertplatz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사진에서는 잘 안 느껴질 것 같은데 굉장히 큰 공간이다.
뒤로도 자리가 더 있고, 아예 뒤편으로는 Grind Market(그라인드 마켓)이 있는데 Crust/Grind Stuff들을 파는 소규모 Zelt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안타깝게도 정신 파느라 사진을 못 찍었..
<Wolfpack ist besser!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내가 Wolfbrigade의 전신 Band인 Wolfpack의 T-Shirt를 입고 있으니 왼쪽 친구가 따라다니면서 계속 말을 건다. 독일 친구인데 좀 취해 있어서 그런지 말을 잘 알아 듣기 어려웠다. 아무튼 우리를 너무 좋아하더라..
<Sound Test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공연은 아닌데 Sound Test가 진행되는 것을 다들 보고 있었다. 무대 왼쪽으로는 Kurze Kunstfilm(단편 예술 영화)를 상영과 동시에 Band Information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상영해준 Kunstfilm들을 나중에 집에 와서 제목도 모른채 검색을 했는데, 찾기야 어려웠지만 진짜 굉장한 작가들 작품.
소규모 독립영화 같은 것들이 아니라 이미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작품들이었다. 몰라 뵜던 내가 죄송할 따름이었지만, 정식 예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내가 유럽의 모든 예술을 꿰뚫고 있기란 어렵다. 아무튼 재미있는 Kurze Komödie (단편 희극)들도 틀어주어서 사람들이 관심있게 보았다.
<Zu viel? Nei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굉장히 많은 Crustie 들이 몰려든 것 같지만 아직 아니다. 더 많다!
<Konzert? Nein, es ist nur arrangieren ㅡ Fotografie von Saebom Lee>
ㅡ Distortion Sound가 들려오길래 공연이라도 갑작스레 하는 줄 알았는데, 다음 날 공연에 앞서 Sound Checking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도 공연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앞으로 몰려가는.. 다들 기대가 큰가보다.
이 후의 사진들은 없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Beer Tent(맥주 텐트)에서 한 잔하며 이야기를 계속 해야 했으니까. 술 마시는데 자꾸 카메라 들고 번쩍거리면 얼마나 성가시겠는지 생각해보면 아무도 탓할 수 없다. 참고로 OEF를 찾은 한국인은 나와 Saebom, Yuying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들 신기해했다. 공연장 내에는 Absinth Cocktail(압생트 칵테일)을 파는 곳도 있었고, Mexikaner(멕시카너; 소금, 후추, 토마토 주스, 보드카 등으로 만든 잔 술)를 파는 곳도 있었다. 맥주는 단지 1Euro 밖에 안 했기 때문에 부담없이 마실 수 있었다.
////////////////// Ein Gedächtnis des Obscene Extreme Festival 2012 - 2, Erstetag in Trutnov
다른 Crustie들과 이야기 하면서 내가 힘들었던 점 하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것은 바로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줄 때 였는데,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을 아는 친구도 있었지만, 굉장히 우경화된 사회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사회적 안전망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오늘날 사실상 합법적인 노예제도와 하등 다를바 없는 Neo Liberalismus(신자유주의)를 미국보다 더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미국의 Wallstreet 자본가들조차 '자본주의 4.0' 따위를 운운하며 Neo Liberalismus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 60년 된 미국식 Neo Liberalismus를 도입하자는 권력들이 전횡하는 것은 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가끔 이러한 말을 하곤 한다. "노예는 노예 그 자신에 의해서 실존한다." 라고. 정치의 종말이라고 부를만한 미국식 양당체제를 한국이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언젠가 한번 투표 거부 운동이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좌파들은 Anarchist Feminist인 Emma Goldmann(엠마 골드만)의 "If I coudn't dancing, I don't want in to be your revolution.(내가 춤 출 수 없다만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라는 말을 인용하면서도 투표 제도의 한계점을 지적했던 "If voting changed anything, they'd make it illegal.(만약 투표가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었다면, 권력자들은 투표를 불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와 같은 말은 무시하는지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 날의 투표 제도의 한계점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만 이 Posting에서는 짧게 이렇게 정리하겠다.
ㅡ 왜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맹신하며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을 뽑는 투표제도가 자신들의 삶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가? 사람들은 정치라는 것을 정치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관통하는 정치를 타인이 대신 다루게 만들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멍청하다며 '국개론'같은 것을 꺼내드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노예처럼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자신들이 존중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는 것이다. 자신들의 존중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면, 노동자를 타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노동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노동자를 압박하는 행동이 자신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 스스로 자신이 존중 받아야만 할 존재임을 모르는 것이 현실의 가장 큰 문제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 한국의 사회 운동이 경색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들은 Europa Antifa(유럽 좌파)들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사회 운동이 굉장히 여러 제약 없이 자율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Antifa 뿐만 아니라 Anarchismus Bewegung(무정부주의 운동)이 탄력을 받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일단 자율적인 운동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한국도 그런 것이 이루어 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예가 바로 2008년 촛불 집회이다. 2008년 촛불 집회 초기에는 여중고생들이 광화문으로 나와 Bigbang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행동에 나선 운동권의 지도부들이 그들을 계도하는 입장에서 다가서면서 촛불 집회 자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계점에 다다렀다. 한국 사회의 사회 운동이 지나치게 제도적이라는 생각은 나뿐인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전부터 이야기 꺼냈던 젊은 활동가들과 운동권 지도부의 불편한 관계가 최근 Twitter의 Bamboo(대나무 숲)를 통해 거론되고 있다.
다시 OEF와 Europäsische Crust/Grind Szene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끝맺겠다. 나는 정치 이야기만을 꺼내기 위해 이 Posting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Crust/Grind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Anti PC Band(反 정치 밴드)들과 우파적 이데올로기로 '신념'을 내세우는 한국의 Crust/Grind Szene은 이제 본연의 Crust/Grind와 Punk Attitude(태도)를 생각해보며 깨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Wolfbrigade - The Awakening>
* Zweite Posting habe ich mit viele Erklärungen geschrieben. Also habe ich mich doppelt so viel Zeit gebraucht. Freilich möchte ich einlässlich schreiben, trotzdem ich nicht kann. Bin ich nicht fleißiger? Ich habe keine Ahnung. Ich bitte dich wie diese Problem zu verstehen. Danke.
* OEF에 관한 두 번째의 Posting에는 여러 설명들이 많이 첨가되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작성하는 시간은 두배로 들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적고 싶었지만 생략된 부분들도 많다. 이 점들에 대해 이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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